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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술 세종로국정포럼 행정쇄신위원장, 일본 오사카 4박5일 탐방기
정홍술 세종로국정포럼 행정쇄신위원장, 일본 오사카 4박5일 탐방기
  • 김왕규 기자
  • 승인 2023.02.02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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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술 행정쇄신위원장

탐방 첫날,

한국 평화대사의 일행으로 오사카를 우리는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 첫날은 일본 오사카행 항공편 창가 좌석에 앉아 바깥구경과 영화감상, 그리고 기내식 을 하다보니 1시간 50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오사카 간사이(關西)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절차는 외국인 입국자가 많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올해가 한일 우호의 해로 요즘은 비자가 면제되어 있었고, 절차도 줄을 길게 서 있던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간편했다. 입국신고서와 여권만 내고 서 일본 공항 직원이 여권에 고무인을 찍어 주었다.

가방을 끌고 나오는데 한복을 입은 일본측 교민분들이 양편 옆으로 줄지어 서서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흔들며 “잘 오셨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하며 공항건물을 빠져 나올 때까지 환영해 주었다. 참으로 대단한 환영이었다. 입국하면서 그저 “수고하십니다.” 라고 인사를 하면서 대기 중인 버스로 향했다. 건물밖에도 몇 미터 간격으로 교민 여러분들이 서서 계속 환영을 해주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는 벌써 1시가 너머 있었다. 호텔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오사카성 관광길에 나섰다. 공항을 벗어나 왼편으로 오사카만 바다를 끼고 꽤 긴 다리를 여러 번 건너며 북쪽으로 달렸다. 버스에는 관광할 때에만 동승할 관광안내원과 세미나행사를 안내할 관계자가 동승했다.

관광안내원이 오사카에 관해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도시는 16세기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의 신도들이 상업지역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전국시대에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여 오사카성을 세우고 에도시대의 중심으로 시가지가 확대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제2의 도시로 상업이 발달한 첨단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역사가 비교적 짧고 유적지가 적은 대신 먹거리 문화가 발달해 세계의 부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안내원이 오사카성에 관해서 계속 안내하였다. 이 성은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3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1586년에 완성한 오사카 최대의 역사적 상징물이다. 그동안 숱하게 겪은 전란의 영향으로 지금은 당초 크기의 5분의 1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남아 있던 것도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파괴되어 지금 있는 성은 1931년에 개축한 것이다.

두시간이 조금 지나서 오사카성 버스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그후 천수각 매표소 앞으로 다시 모이라고 안내원이 주지를 시켰다. 오사카성을 쌓은 큰 돌들을 보며 천수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사카성의 상징인 덴슈가쿠(天守閣)는 5층 8단으로 되어 있는데 보통 8층이라고 한다.

이 건물을 밖에서 보면 대체로 푸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전망대로 올라갔다.

8층에는 오사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빙 둘러 베란다처럼 만들어 놓았다.

오사카는 부산과 달리 산이없고 넓어서 사방으로 한 바퀴 돌면서 시 전체를 볼 수 있었다.

7층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부터 보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각층에 전시물들을 보았다. 계단이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따로 있어서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부딪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소위 순로를 이 계단에도 만들어 놓은 것이다.

2층에는 복제품 전시와 패널 전시코너가 있어서 유료로 기념 촬영하는데 용마루 양끝에 다는 실제크기의 장식 동물상 이였다.

천수각 1층 기념품판매점을 둘러본 후 광장에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서커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을 관중과 함께 보았다. 천수각을 내려와서 건물 왼쪽 편으로 돌아내려 갔다.

천수각 뒤편에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흙바닥에 아무런 장식도 없이 진열되어 있는 데 그것이 오사카성을 쌓을 때 참여했던 다이묘들의 가문을 새겨 놓은 것으로 刻印石 광장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아도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당시 위세를 알 수 있다.

그 오른편으로 자그마한 석비가 세워져있다. 이곳이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가 자결한 장소이다. 히데요시가 6살짜리 아들을 두고 죽으며 걱정했던 대로 그가 죽은 뒤에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으로 쳐들어와 히데요리는 성으로 밀려드는 도꾸가와 군을 막지 못하고 자결했다. 이 히데요리는 도꾸가와의 손자사위라고 하니 정권욕에는 친척도 필요가 없는 것인가 보다.

다시 반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남항에 있는 하얏트 리젠시 호텔(大阪市 住之江區 南港北1-13-11)에 도착했다. 이 호텔은 28층 건물로 27층까지 객실이 있었는데 방에 들어가 커튼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까 바다 쪽과 면해 있어서 오사카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좋은 위치였다. 그러나 바다를 매립하여 건물들을 지어 놓아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전경은 아니었다.

저녁무릅 부터 호텔 3층 연회장에서 환영만찬이 있었다. 만찬장은 2층에서 내려 로비를 지나 옆으로 걸어올라 가게 되어 있는데 그곳에도 한복을 입은 여성분들이 서서 안내를 하였다. 국제 세미나 개최 안내, 일본 측 임원의 인사, 내빈소개 등이 있고 난 뒤 양식류의 식사가 나왔다.

2부는 한국인 2세라는 소년·소녀들이 일본의 ‘천지보은’이라는 북춤부터 시작되었다. 활달한 제스처와 기합 소리가 일체감을 일으키게 하는 춤이었다. 다음에는 일본인 남자 엔카 가수 ‘이와사키 준’이 한국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을 한국어로 외워서 불렀으나 가사가 생각이 안 나면 그냥 일본어로 불렀으나 노력한 흔적이 가상하였다. 일본 노래로 "ズンドコ節“를 불렀는데 곡이 괜찮은 것 같아 나중에 배우고 싶어서 호텔 종업원한테 노래 제목이 뭐냐며 부탁하여 노래 제목을 적어두었다.

그다음에는 우리를 안내하던 한복을 입은 여성분들, 그들은 한국에서 일본사람에게 시집와서 살고 있는데 대개 15년 정도 일본에서 살면서 어려운 적응기를 거쳐 이제는 살기가 괜찮다고 했다. 그녀들이 ‘홀로 아리랑’을 합창했다. 우리 일행들은 그녀들에게 동포애라는 점도 있고 해서 더욱 우렁찬 손뼉을 쳤다.

만찬을 마치자 시간이 너무 늦었지만, 외국에 와서 하룻밤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하여 각자 방으로 가서 외출준비를 해서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안내원들에게 미리 알아본 바로는 남바(難波)가 좋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호텔 종업원에게 물어 가까운 역에서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다.

나카후토우(中ふ頭)역은 3백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역은 오사카의 가장 서남쪽 변두리에 있는데 남쪽에 있는 스미노엔고엔(住之江公園)역 사이를 다니는 경전철로 예전 수인선 전차와 비슷하여 차폭이 상당히 좁으므로 앞사람과 마주 보고 이야기하기에 알맞았다.

단선으로 길 위의 고가철도로 3량의 경전철을 운행하는데 기관사가 없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노선의 길이도 8개 역뿐이니까 매우 짧은 코스였다.

이 경전철을 타고 스미노엔고엔역에서 욧츠바시센(四つ橋線)으로 갈아타고 여섯 역을 가서 내리면 남바였다. 역무원에게 어느 쪽이 가장 번화한가를 물어 출구를 나갔으나 별로 번화하지 않아 네온사인과 간판 불빛이 많은 곳으로 길을 건너갔다. 포장마차라도 있으면 사 먹자고 했으나 길거리에는 이미 시간이 늦어 아무것도 없었다. 점포들도 거의 문을 닫아 저녁 늦게는 다녀봐야 허사라는 걸 알았다.

골목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관광안내서에서 본 도톰보리(道頓堀)라고 길을 가로질러 머리 위로 크게 쓰여 있는 간판이 보였다. 이 지역은 일본의 음식점과 술집과 오락실, 극장 등의 다양한 시설들이 모여 있는 오사카에서 가장 번화한 유흥지역이다. 오사카에 관광을 온 사람은 누구나 들려가는 장소로 오기는 제대로 잘 왔는데 너무 늦어서 하는 수없이 다시 지하철을 타고 그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호텔로 돌아와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멸치로 안주 삼아 나누어 마셨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히라가나 및 가다까나를 조금 알고 한문이 있어 철도 노선표만 보고도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탐방 둘째날,

아침 식사는 6시 반부터 하게 되어 있어 일찍 식사를 하였다.8시 반에 시작하는 세미나장에 갔을 때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미 와 있었다. 꽉 짜여진 세미나 강좌로 일정이 정해져 있었다.

오후 한 강좌를 마치고 호텔 앞에 있는 공원의 계단에서 전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 비와(琵琶)호수를 가려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비와호수는 오사카 인근 시가현에 있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이며 카스피해와 바이칼호 등과 같이 오래된 호수로서 자연사 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호수 중의 하나로, 수십만 년 전에 탄생한 호수로 세계의 10개 안에 손꼽히는 유명한 호수라고 한다.

약 4백만 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곳인데 많은 동식물과 신비한 전설 등 역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호수이다. 비와호 주변에는 생물을 연구 전시 보전하는 박물관과 그 에 캠핑장과 호텔을 비롯한 유락시설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고 하여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 꼭 가 보려고 하던 곳이었다.

역으로 가서 역무원에게 얼마나 걸리느냐?. 지하철로 갈 수 있느냐를 묻고 있는데 마침 우리곁을 지나가던 젊은 여성이 한국말로 2시간 반을 가야 하는데 지금 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오니 아침부터 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더군다나 상점이나 관광지 모두 문을 닫아서 가봐야 헛걸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호수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기왕 강의를 빼먹고 나왔는데 그대로 시내 관광을 하자는 의견과 오후 한 시간 남은 강좌를 다시 듣고 저녁에 시내로 나가자는 의견으로 나누어졌으나 다시 호텔로 돌아와 세미나에 참석했다.

세미나를 마치고 오늘은 오사카에서 한국 동포들이 제일 많이 산다는 쯔루하시(鶴橋)에 가 보기로 하고 나카후토우역에서 전철을 탔다.

쯔루하시역에서 역무원에게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한국인이 제일 많은지 물어보고 6번 출구로 나갔다. 그런데 한글 간판이 보이지 않고 거리의 상가의 불빛도 흐렸다. 골목을 오가며 찾아보니 몇 군데 한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일본어 간판도 불고기 같은 음식을 하고 있어 한국 음식업소이고 아마 주인도 한국계일 것이다. 이곳이 상가 지역이라 8시까지 영업을 하지, 그 외의 지역은 퇴근 시간에 맞춰 문을 닫아 조용하고 거리 구경을 할 곳이 없었다. 역 주변을 모두 돌아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늦은 저녁때라 한국식당들도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포장마차형 식당에 앉아 부침개, 김치 등을 안주로 막걸리, 소주를 마시며 오사카의 저녁을 즐겼다. 이 가게도 우리가 있어 우리가 갈 때까지 퇴근 시간을 늦추어 주고 있는 것이었다.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 너무 일러 또다시 전철을 타고 오사카역이 있는 우메다(梅田)역에 내렸다. 이곳은 오사카에서 제일 번화가인지라 인파가 많이 있는 편이었다. 오사카 시내 관광버스 안내소 푯말이 있어 시내 야경을 구경하려고 찾았으나 낮에만 운영한다고 하여 포기하기로 했다.

탐방 셋째날

오늘이 이곳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 6시 반경에 식사하고 9시 전에 강의받을 준비를 하는 것은 어제와 마찬가지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오사카 해양박물관을 방문하기로 하고. 저는 동료 한분과 살짝 빠져나가 입장료 600엔을 내고 자판기에서 토큰을 받아 그 토큰을 넣고 입장하여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해중도로를 약60미터 걸어가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해중도로 윗면의 유리를 통해 바닷가의 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엘리베이터로 4층까지 올라가 시계방향으로 돌아 관람하는 코스인데 오사카 해양 박물관에서는 세계의 해양교류를 비롯하여 해상교통요소로서 발전해온 오사카의 「바다의 교류사」와 접하면서 사람들이 바다. 배, 항구와 어떻게 관계되어 왔는가를 가까이 느끼면서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바다에 뜬 유리돔의 중앙 부분은 복원된 히카키회선의 배가 있어서 선상에서의 선원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내부를 개방 하였다.

관람을 마치고 입구 현관에서 안내하는 요시다양으로부터 오사카 주변 관광 소책자를 받고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무역센터 건물을 돌아보고 강의실에 돌아오니 마지막 시간을 남겨놓은 상태의 휴식시간이었다. 재빨리 호텔방에 자료를 넣고 마지막 세미나에 참여한 후 저녁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유니버셜 스튜디오로 향하였다.

호텔에서 멀지 않았으나 전철을 3번이나 갈아타는데 그중 한번은 나갔다 다시 표를 끊어 JR 유메사키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는 열차는 온통 그림으로 치장했는데 약 5분후에 유니버설 시티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약 250m쯤 걸으니 유니버셜 포트 호텔, 케이한 호텔 등 호텔이 몇 개 보이고 그 아래 건물들에 식당, 빠징코들의 시설들이 호화롭게 있었다. 그때 그 아래쪽에서 음악 소리 같은 것이 들려 더 내려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이 일본 3대 테마파크 중에 하나라고 하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이었다. 오사카에서 꼭 가볼 만 한 곳으로 오사카 안내서에 나와 있는 곳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자고 했으나 입장료가 1인당 5,500엔으로 비싸고, 벌써 9시가 다 되어 입장을 못 하도록 막고 있었다. 입장권이 1일 권, 2일 권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이틀은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뜻 같았다. 기회가 되면 그때 보기로 하고 나오는데 많은 젊은이가 전철을 타려고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오사카에 다닐 때는 사람들이 별로 거리에 없었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약간의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젊은이들이 거리를 꽉 메우고 움직이고 있었다. 꽤 외진 곳이고 입장료도 비싼데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활기찼다. 이 도시에도 이런 면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호텔로 돌아올 때도 어차피 다시 표를 끊을 바에야 나가서 구경이나 하자고 하여 세븐일레븐, 부동산 소개소, 싸구려 음식점 등을 두루 섭렵하고 호텔에 들어오니 또 자정이 넘었다.

탐방 넷째날

오늘은 나라지방과 오사카를 관광하는 날이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8시 전에 관광버스를 탔다. 오전에는 나라지방을 관광하기로 되어 있어 우리가 탄 버스 4대가 동시에 나라로 향했다. 버스는 한꺼번에 움직이게 되어 있어 내가 찬 4호 차는 항상 맨 뒤에서 따라갔다.

나라 지방으로 들어서니 나라공원 초입에는 여전히 사슴들이 여기저기에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라공원은 와카쿠사산(若草山)과 가스가산(春日山)을 포함해 동서 4km, 남북2km에 이르는 넓은 자연공원이다. 이 공원 안에 도다이지(東大寺). 가스카따이샤(春日大寺) 등 유명한 절과 신사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또 이 공원에는 12백 마리의 사슴들이 방목되고 있는데 매년 죽는 놈과 태어나는 놈이 비슷하다고 한다.

꼬불꼬불하게 산머리를 끼고 새로 만든 와카쿠사 드라이브 웨이를 달려서 도착한 곳이 342m 높이의 와카쿠사산, 이곳까지 오는 곳의 길거리 모습은 한국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산에 있는 수종들이 약간 다르고, 산림이 조금 더 우거져 있었다. 산밑 입구에서 내려 정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산 위는 평평하고 풀들이 잔디밭처럼 깔려 있었다. 가랑비가 내리다 그쳤는데도 작은 도시, 나라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비가 와서 도시의 모습이 더욱 시원하고 산뜻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나라는 일본의 고대사와 신화 그리고 전통의 무대라고 한다. 오래된 절과 신사, 불상 등 문화재가 밀집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백제와 관련이 깊은 곳이라고 한다.

710년에서 784년까지 잠시 일본의 수도였으며 예술, 공예, 문학, 그리고 산업의 요람지 역할을 했다. 백제로부터 최초로 불교를 전파받아 융성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1200년 전의 나라는 현재보다 훨씬 더 큰 도시였으며 광대한 궁과 절들이 많았다. 현재는 푸른 녹색의 숲을 비롯하여 많은 공원과 전통찻집이 있으며,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어 수학여행지로 손꼽히는 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너무나 조용하고 한가해서 요즈음의 학생들은 나라에 수학여행을 오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2십여m쯤 비슷하게 올라간 곳이 이 산의 정상인데 그곳에는 앵릉(鶯陵)이라고 새겨놓은 돌비석이 하나 있었다.

다시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서 도다이지(東大寺)에 도착하였다. 이 절은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라는 대불전과 역시 세계 최대의 청동 불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절의 입구인 남대문은 송나라의 천축(天竺)양식을 도입하여 재건한 것이라고 하였다.

대불전이 커서 사진에 모두 들어갈 수 없어 멀리서 사진을 찍고, 대불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약수도 한 잔 떠서 마셨다. 또 대불전에 앞에 있는 커다란 향로에는 사람들이 둘러서서 옆에 비치해 놓은 향을 꺼내 피우고 있었다.

대불전으로 들어가서 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청동 불상이 여전히 그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대불의 크기는 높이가 49m, 폭이 53m, 무게가 452톤이라고 한다. 이 대불은 전국에 있는 구리를 모아 9년간에 걸쳐 만든 역작 품이라고 한다.

이 대불의 뒤쪽도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뒤로 한 바퀴 돌다 보면 오른편 기둥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사람들이 이 구멍을 기어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구멍을 통해서 빠져나오면 액땜을 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에 사람들이 그 구멍을 기어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옆으로 빠져 밖으로 나와 우리 팀끼리 다시 만났다. 저쪽 위로 가스가따이샤(春日大社)가 보였다. 그냥 시간을 기다리느니 신사에 올라가 보자고 하여 계단 길을 올라 신사로 갔다. 신사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고 매우 썰렁했다.

신사를 나와 길을 따라가니 먼저 三月堂(산가쯔도)이라고 쓴 큰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이 건물은 도다이지 창건 이전에 세워진 절의 자취라고 하는데 그 내력이 알려진 바 없다. 이 건물은 음력 3월에 홋께가이(法華會)가 열리기 때문에 삼월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옆으로 삼월당보다도 더 큰 규모의 건물이 있는데 이것이 二月堂(니가쯔도)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계단 양쪽 끝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시주액을 새긴 등룡과 돌기둥들이 빈틈없이 서 있었다. 이 돌기둥을 보면 역사가 오래된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길 왼편으로 四月堂이 있었으나 별로 눈에 띄는 건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옆으로 내려가면 종루가 오른편으로 있었다. 왜 종루가 이렇게 따로 외롭게 떨어져 있는지 의아했다.

우리가 식사할 미카사(三笠)관광회관(奈良市若草山麓町933)은 2층 건물로 1층은 기념품 가게, 2층은 식당으로 매우 큰 건물로 관광을 온 사람들이 식사하는 대표적인 식당이었다.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오사카로 떠났다. 오사카성 옆에 있는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이 박물관은 NHK방송과 한 건물로 보통 박물관과는 달리 10층짜리 현대식 고층빌딩이다. 이 도시의 태동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변천사를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은 것이 특징이었다.

1층을 본 뒤에 10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10층 고대실을 보고, 내려가며 9층 중근대실, 8층 고고탐험갤러리, 7층 근현대실 순서로 보았다.

10층에서 나라시대의 나니와노미야(難波宮)의 국가의례를 집전하던 다이코구덴(大極殿)에서 대형스크린으로 당시의 모습을 영상물로 보았다. 스크린이 열리면서 통유리를 통하여 최근에 발굴했다는 옛 궁터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9층은 노부가나(信長)와 전쟁을 했던 혼간지(本願寺) 시대, 중세, 근세 시대, 8층은 나니와 고고학 연구소로 실물크기로 발굴현장을 재현, 7층은 근대, 현대로 다이쇼우(大正)말기부터 쇼오와(昭和)초기에 눈에 띄게 번화한 신사이바시수지(心齊橋筋), 도톰보리 등의 거리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놓았다.

박물관에서 본 유적지를 촬영하고 박물관 전 코스를 돌면서 방문기념 스탬프를 전부 찍으니 마지막에 책꽂이와 사각상자를 만들 수 있는 종이와 팜플렜을 받았다.

박물관을 나와 다음에는 쇼핑을 위하여 신사이바시(心齊橋)로 옮겼다. 신사이바시는 서일본 제일의 쇼핑가로 유행의 첨단을 걷는 상점과 전통 상점들로 이어져 있다.

소니타워 앞에서 버스를 내려 코너를 돌아 길게 이어지는 상가를 걸어가며 물건을 사기보다는 구경을 하였다. 소고 백화점에 들러 1, 2층을 돌아보았으나 역시 가격이 비싸서 그냥 나왔다.

오사카에 와서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은 유니버셜 스튜디오 다음으로 시내에서는 신사이바시가 처음이었다.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나 거리가 정비되어 바둑판같이 되어 있고 건물들이 훨씬 깨끗하고 거리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세련된 상점과 오락실이 즐비하였다.

세일을 한다는 광고용 포스터들이 붙어 있는 곳도 많으나 가격은 만만치 않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유행하는 의상을 입고 활기차게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여 오사카의 명물이라는 우동, 튀김, 다코야키 같은 음식 맛을 보지 못하고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인 소니타워 앞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서구 우츠보홈마치(靭本町1-19) 파크호텔 1층에 있는 일본관광정보센터로 갔다. 그 곳에는 선물로 살 수 있는 모든 상품들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소비세 5%를 붙이지 않고 팔아 모두 이곳에서 각종 선물을 샀다.

호텔로 돌아와 한동안 쉰 다음 저녁만찬 연회장에서 “한일 우정의 해”를 기념하여 한일지도자 친선 교류의 밤 행사로 자매결연식 겸 만찬이 있었다. 정장을 입고 미리 결연할 사람에게 줄 준비한 선물을 가지고 식장에 참석하여 각자 지정된 좌석에 앉으면 옆에 일본사람이 앉게 되어 있었다.

선물은 각자 한국적인 기념품을 준비하도록 연락을 받아 인사동에 가서 탈, 태극문양 들어간 장고. 등 을 나름대로 가장 한국적인 선물을 준비하여 가져 갔었다.

한일지도자 친선 교류의 밤 행사는 일본인 마에다 소토지의 사회로 개회선언 되어 한국측에서는 학자. 공익기관장, 기업인, 언론방송인, 연예인. 스포츠해설위원, 등 주관 대표단장의 인사 및 소감 발표를 하였고, 일본측에서는 무로이 구니히코 전 중의원의원,민단중앙본부 고문, 사까우에 요시히데 전 중의원 의원 등이 대표인사 및 건배를 제의하는 행사로 이어졌다.

자매결연식은 한 테이블에 한국사람 5명 자매결연할 일본사람 5명이 사이사이에 앉도록 자리배치가 되어 있었고 선물교환과 함께 결연식에 싸인을 하고 교환하였다.

나와 결연을 맺은 분은 Hyougo의 大觀寺 住職 奧土居 師心(okudoi suishin)인데 suishin승려는 광고회사, 건강식품회사 등의 경영에 종사했었고 한신 아와지 대지진을 계기로 태교. 유아 교실을 코베시에 개교한 후 현재는 니시캄베. 마이코. 아카시. 서코베남의 4교실에 400명의 학생이 배우고 있고, 또한 전국 400교실이 가맹한 SCA 아이 교육 미래넷 실행위원장과 기타 여러 가지 수행을 거듭한 후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실시한 육아 강연회(「마음의 교육」, 「잠재의식 활용법」, 「마음의 교육 & 풍수로부터 배우는 육아」등)는 9년간에 300회를 넘었고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한다.

선물로 준 자신의 저서 「一心一書」에 대형벽걸이 액자에 글을 써 원작에 조력을 해주신 金田石城(카네다 세키죠 : 아사히 텔레비전 「수퍼 모닝」고정 출연, NHK 「시험해 갓텐」출연)에 의하면 하나의 말에 독자적인 해석을 더해진 저자의 문장은 극히 명쾌하고, 안쪽의 깊은 것이 있어 이 저서야말로 현대인의 바이블이라고 실감한다고 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대화보다는 천일국 가무단 외 기타 문화공연을 관람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 후 폐회식 후에 집이 멀다하여 바로 출발한다고 하여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내일은 떠나는 날이라 바다가 내려다보여 전망이 가장 좋은 동료의 방에 함께한 일행이 모두 모여 만찬 때 자매결연 한 사람에 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즐거운 담소가 이어졌다.

탐방 마지막날

아침부터 서둘러 일어나서 짐을 쌌다. 06시부터 아침 식사를 하고. 07시 반경 연회장에서 단체사진을 촬영 하였다.

08시에 평화대사 임명장 수여 하였고, KOC상임위원 등의 세미나 소감 발표, 기타 광고사항 등을 하고 폐회식을 마쳤다.

호텔을 출발하여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달렸다. 내가 앉은 자리가 마침 바다 쪽이라 간사이공항까지 계속 바다를 매립 하여 지은 큰 공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맑아 바다도 멀리까지 보여 떠나는 여행객의 마음에 하나의 추억으로 다가왔다.

공항에 도착하여 항공권을 바꾸고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절차를 마치고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빙카를 타고 우리가 탈 게이트로 옮겨 갔다. 내 좌석은 창가라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에는 날씨가 청명하여 육지의 도시, 마을, 도로, 산, 들 등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간사이공항을 이륙한 후 2시간도 안 되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가방을 찾은 우리 일행들은 바로 로비로 나와 작별의 인사로 헤어졌다.

외국에 가면 항상 느끼고 배우는 것이 있고. 잊어버리지 않는 추억이 남는다.

이번 세미나의 여행 탐구는 낯선곳을 안내자없이 륨메이트 둘이서 실 생활을 하고 있는 일본문화를 짧게나마 접할 수 있는 체험이 남다른 추억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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